2023년10월21일 34번
[과목 구분 없음]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 ①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
- ② 한성순보를 발간하는 관리
- ③ 단발령 시행에 반발하는 유생
- ④ 경인선 철도 개통식을 구경하는 청년
(정답률: 71%)
문제 해설
정답> ①
왼쪽 말풍선에 '이 사진을 보면 경무부와 헌병대 간판이 나란이 걸려 있네요'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그렇습니다. 이 시기 일제는 군사 경찰인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까지 맡는 헌병 경찰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밑줄 그은 '이 시기'는 일제가 헌병 경찰*을 통해 무단 통치를 하던 1910년대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떄는 교사도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수업을 하였다.
*헌병 경찰제: 일제는 1910년 한일 강제 병탄 직후부터 헌병 경찰제를 시행하였다(~1919년 3·1 운동이 발생할 때까지 실시, '무단 통치기'). 하지만 법령상으로 헌병 경찰제는 이미 강제 병탄 이전에 도입되었다. 1907년 10월 ‘한국 주차(駐箚) 헌병에 관한 건’을 통하여 한국에 주둔하는 헌병이 치안 유지에 관한 경찰 업무까지 장악하도록 규정하였다. 병탄 직전에는 한국주차군 헌병사령관이 경무총감을 겸임하게 하고, 1910년 6월 29일 ‘통감부 경찰관서 관제’를 공포하여 헌병 조직과 경찰 조직을 완전히 통합하면서 헌병 경찰제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조선 총독부로 이어져 헌병 경찰은 일제 무단 통치의 핵심 조직이 되었다.
오답 해설>
② 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된 것은 1883년(고종 20) 10월의 일이다. 한성순보는 순 한문 신문으로 열흘마다 발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③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이 시행된 것은 음력 1895년 11월 17일로, 양력으로는 1896년 1월 1일에 해당한다(음력 1895년 11월 15일 공포). 이후 단발령의 철회를 요구하는 상소문과 의병 운동이 계속되자 단발을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하면서 1897년(고종 34) 8월 공식적으로 단발령을 철회하였다(이후 1900년대 초에 다시 시행).
④ 서울 서대문 정거장에서 경인선 철도 개통식이 열린 것은 1900년 11월의 일이다(1900.11.12)(1899년 개통은 일본측의 잘못된 주장으로 철회함). 참고로 이후 1905년 5월에는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에서 경부선 철도가 두 번째로 개통되었다.
왼쪽 말풍선에 '이 사진을 보면 경무부와 헌병대 간판이 나란이 걸려 있네요'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그렇습니다. 이 시기 일제는 군사 경찰인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까지 맡는 헌병 경찰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 속 밑줄 그은 '이 시기'는 일제가 헌병 경찰*을 통해 무단 통치를 하던 1910년대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떄는 교사도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수업을 하였다.
*헌병 경찰제: 일제는 1910년 한일 강제 병탄 직후부터 헌병 경찰제를 시행하였다(~1919년 3·1 운동이 발생할 때까지 실시, '무단 통치기'). 하지만 법령상으로 헌병 경찰제는 이미 강제 병탄 이전에 도입되었다. 1907년 10월 ‘한국 주차(駐箚) 헌병에 관한 건’을 통하여 한국에 주둔하는 헌병이 치안 유지에 관한 경찰 업무까지 장악하도록 규정하였다. 병탄 직전에는 한국주차군 헌병사령관이 경무총감을 겸임하게 하고, 1910년 6월 29일 ‘통감부 경찰관서 관제’를 공포하여 헌병 조직과 경찰 조직을 완전히 통합하면서 헌병 경찰제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조선 총독부로 이어져 헌병 경찰은 일제 무단 통치의 핵심 조직이 되었다.
오답 해설>
② 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된 것은 1883년(고종 20) 10월의 일이다. 한성순보는 순 한문 신문으로 열흘마다 발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③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이 시행된 것은 음력 1895년 11월 17일로, 양력으로는 1896년 1월 1일에 해당한다(음력 1895년 11월 15일 공포). 이후 단발령의 철회를 요구하는 상소문과 의병 운동이 계속되자 단발을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하면서 1897년(고종 34) 8월 공식적으로 단발령을 철회하였다(이후 1900년대 초에 다시 시행).
④ 서울 서대문 정거장에서 경인선 철도 개통식이 열린 것은 1900년 11월의 일이다(1900.11.12)(1899년 개통은 일본측의 잘못된 주장으로 철회함). 참고로 이후 1905년 5월에는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에서 경부선 철도가 두 번째로 개통되었다.